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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늘어나는 LP 배달, 그리고 히피의 추억


 

우체부는 남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봅니다. 내가 배달하는 우편물로서 세상을 읽어내는 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 라우트를 가진 지 3년 정도가 지났으니, 사실 이정도는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는 우편물들 종류를 보면, 대략 수취인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고, 몇살쯤이고, 경제적인 상황이라던지, 지금 처한 개인적 상황 같은 것이 직접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보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의사들은 JAMA 같은 학회지를 자주 받고, 저처럼 와인 좋아하는 사람들은 와인 스펙테이터나 다른 와인 관련 잡지들을 받아보며,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패션 카탈로그들을 엄청 받아보며 'Elle'나 보그 같은 잡지들을 받아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략 젊은 여성이며 전문직이 있는 사람들이지요.

느닷없이 커플이 살던 집에서 한 사람만 우편물을 받기 시작하면, 그 집의 애정전선에 이상이 생겼다는 증거이고, 한 집에 마이크랑 리처드가 함께 우편물을 받고 있으면 당연히 게이이며... 뭐 이런 식입니다. 재미있는 건, 그런 추리들이 대략 큰 틀을 벗어나지 않고 맞아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체부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봅니다. 제가 배달하는 라우트의 가구 수가 1천 가구이고, 그중 1/3 정도가 싱글입니다. 또 커플이 사는 집이 대부분이지만 간혹가다가 여러사람 사는 집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우편물을 배달해서 받는 사람들의 수는 약 1천 5백에서 2천명 사이일 터입니다. 원체 이곳이 학교들이 가깝고 유동인구가 많은 까닭에 정확한 수치를 낸다는 건 그 유동성 때문에 불가하지만, 그래도 대략 토박이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거의 눈에 보이다시피 합니다.

 

요즘 들어 눈에 띄는 현상 하나가 있습니다. LP 배달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사실 이제는 옛날을 추억하는 복고풍의 물건이 되어 버린 레코드 판이 왜 이렇게 인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것은 어렸을 적에 자기들의 부모나 혹은 형, 삼촌, 누나... 등등이 소중히 LP를 모으고 듣던 것을 지켜보던 세대들이 성인으로 자라났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들이 듣는 음악을 아파트 바깥에서 듣고 있으면, 거의 80년대의 락큰롤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 대략 맞다는 것을 짐작케 해 줍니다.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 아이언 메이든, 메탈리카 등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나 들었을법한 음악들이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그래, 내게도 그런 옛날이 있었지' 하는 어떤 회상에 젖게 됩니다.

 

아마 LP를 샵에서 구하기가 어려우니, 이곳의 대표적 경매사이트인 이베이를 이용하는 모양이고, 경매에 부쳐진 명반들을 받는 순간이 그들에겐 희열의 순간인 모양입니다. 대부분 아파트인 제 라우트의 경우, 도난을 우려해서 저는 반드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포는 꼭 수취인에게 직접 전해주거나,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매니저에게 전해주고, 아니면 그 사람이 사는 아파트 문 앞에 꼭 놓아주고 갑니다. 만일 수취인이 집에 있을 경우, 얼굴들을 보면 장난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저에게까지 들어보라면서 음악을 틀어주며 신나하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재밌는 건, 그들이 나이가 많이 먹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0대 초반에서 후반 정도의 친구들입니다. 저보다 훨씬 어린. 그러나 그들이 빠져 있는 음악들은 모두 제 세대의 음악입니다. 재밌습니다.

 

왜 갑자기 이런 복고의 바람이 부는 건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들에게도 '예전에 내가 어렸을 적이 좋았다'는, 그런 애상이 있는 걸까요? 현대는 편안해지고, 간편해지고, 음악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생생해졌지만, 때로 지직거리며 툭툭 튀는 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훨씬 편안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요?

그것은 비인간성에 대한 증오의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금속성이 지배하는 세상, 진짜 인간다운 것이 그리운, 그런 세상이 된 모양입니다. 비인간적이며 차가운 것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뭔가 인간다운 것이, 그 향수가 그리운 사람들은 이렇게 음악도 판으로 들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판에는 마리화나 연기 찌든 히피들의 미국이 숨어 있고, 공허하고 방황하는 젊음의 군상들의 애상이 스며 있습니다. 섹스 피스톨즈, 에어로스미스,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들이 흘러나오는 아파트 복도에서, 저는 예전엔 그들의 친구들과 함께 했을 히피들의 공동 문화가 사라진 지금의 미국에서, 그 옛날의 세대를 그리워하는 지금 세대들의 고독과 그리움을 봅니다.

 

이제 황금 만능주의는 '대세'정도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사회의 기본 철칙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성은 더욱 메말라가고, 이런 세상이 두려운 이 시대의 피터팬들은 행동을 잃어버린 채 방안에 앉아 옛날 음악으로 그들을 도피시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 하나가 자리잡고 있으니, 그게 다가오는 이번 대선입니다. 그래서 저도 '들국화'의 LP 한 장을 걸어놓고,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단지 제 한 표만으로만 '그', 배럭 오바마를 돕고 있는 저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 안에 틀어박혀 LP를 틀어놓고 옛날 음악을 듣고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이번에 모두 깨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반대하며 사랑을 추구했던 히피들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들의 집단성이 오늘 이 세상에서 공유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우리나라를 더욱 자랑스레 생각합니다. 가장 개인주의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PC 의 화면 앞에서, 거리의 소통을 이뤄낸 수많은 네티즌들의 힘을. 그리고 그 힘을 믿습니다. 우리나라 네티즌의 모습을 보면서 미국의 신세대 히피들과 네티즌들도 힘을 얻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시애틀에서... 

글쓴이: 권종상, 2008년8월24일

*이 글은 다음 세계엔에 올라 온 글을 글쓴이의 동의를 얻어 여기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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